2012. 9. 19. 19:37

 

 

2주째 제대로 된 잠을 못 잤고, 산바 지나가던 날에는 아주 사소한 레이어들이 겹쳐 거대한 짜증을 만들어냈다. 감정의 파도는 당연 이리저리 휘둘렸지만 간신히 둑은 터지지 않아 차라리 우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간신히 또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려다 이건 아니다 싶어 술과 고기가 먹고 싶다던, 후배를 불러냈다.

그 아이와 나는 만성 우울을 안주 삼아 -실제로는 ‘가꾸니’라는 돼지고기 안주였지만- 각기 두 병의 소주를 비웠다. 비우는 동안, 재활용품을 이용한 가구 만들기에서 시작해 연애를 지나 고양이 기르기까지 꽤 폭 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갓 비 그친 하늘처럼 어두컴컴한 두 사람이 술병을 만나며 개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우울도 안주로 삼기에 나쁘지 않았다. 인테리어에 희망을 본 그 녀석에게나 오랜만에 꿈도 없는 잠을 잘 수 있었던 나에게나. 그러나 우울이란 안주는 늘 진한 숙취를 남긴다는 것이 오늘의 교훈.

 

* 끝이 꼬인 첫 번째 소주병의 뚜껑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4병의 소주를 비웠다. 첫 번째 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우울이라는 안주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그 다음번부터는 미처 별 모양을 만들거나 바구니 손잡이처럼 꼬아주질 못했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