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1. 16:44
 
B는 술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B를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B와 낮술을 마시자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어제야 지킬 수 있었다. 운전도 할 줄 아는 멋진 여자, B와는 합정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약속 전날 B는 전화를 걸어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귀찮으니 집에서 먹자'며 '족발 시켜 줄게'라고 나를 꼬여냈다. 낚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B와 나는 공식적으로 백수였고, 백수는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마다해선 안 되니까.
그녀의 집에 도착해 족발이 오기를 기다리며 김치전을 만들었다. 뭔가 돕고 싶었지만 요리도 잘하는 B는 정중히 거절했다. 첫번째 김치전이 다 익었을 때 족발이 도착했고, 냉동실에서 B가 넣어두었던 소주와 소주잔을 꺼내며 그녀의 남다른 센스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이 여자, 소주를 사랑하고 있어!
오순도순 음악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주부이기에 할 수 있고 주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주 두 병을 비웠다. B는 술 마시고 요리하고 집안 살림 살뜰히 보살피는 재주 외에도 적재적소에 추임새 넣는 재주도 있었다. 그저 그런 이야기도 감칠맛나게 바꿔주는 그 추임새라니!
해질무렵, 소주 두 병을 말끔히 비웠을 때, B는 나가자고 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오뎅바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소주를 마셨다. 오물오물 오뎅을 씹고 소주를 삼키던 중, B의 짝꿍이 퇴근했음을 알려왔고,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파했다.
집에 오는 길, B에게는 배울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라든지, 살림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든지, 우리들은 비슷한 점이 많으니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B와 같은 술친구가 있어 참, 행복했던 하루였다.


◁ 옵션이 없어 더욱 맛좋은 족발. 그녀는 참이슬을 고집하고 나는 처음처럼을 고집해 둘이 마시면 각 1병씩 앞에 두고 마시곤했는데, 최근 B가 처음처럼으로 전향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