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3. 14:52
화요일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에 낮부터 마셔댔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술로 연말 분위기 내는 것은 이제 그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녹록치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목덜미를 잡아채었고, 그렇게 버티다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도착해 왜 안 나오느냐고 성화를 부리다, 시간 많은 티 내지 말라고 B에게 한 소리 들었다. 어쨌든 송년 모임을 가장한 화요일의 술자리. 누구는 어제 먹은 술안주가 00라서, 누구는 오늘 점심에 먹은 메뉴가 00라서, 안주를 정하는데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긴 했지만 송년모임의 취지는 역시 술과 사람이었으므로, 대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날은 B와 P와 G와 A와 H와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여자들이 옹기종기 술잔을 기울였다. 보쌈족발 세트와 기본안주로 나오는 감자탕과 묵은지갈비찜을 안주삼아 서로에게 애교를 부리고 추임새도 넣어주고 깔깔깔 웃으면서 소주 네 병(혹은 다섯 병)과 맥주 세 병(혹은 네 병)을 비웠다. 어깨 동무를 하고 이차로 옮기는 사이에 놀랍게도 P가 집으로 돌아갔고, 무사히 보내줄 수 없어 가방도 뺏어보고 협박도 해보고 애교도 떨어보았지만 결국엔 집으로 가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줄 수 밖에 없었다. 서른 넘은 여자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하니까, 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냥 쉬게 해주고 싶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찍으라고 성화였다. 실험적인 사진을 위해 한껏 멋을 부려 찍은 보쌈족발 셋트. 최고예요! 이름 모를 여성의 사진은 이차로 옮기던 중 '나 이거 좋아!'하면서 찍었는데, 이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뒤쪽에 있던 커플이 플래시에 깜짝 놀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리고 이차. 양념반후라이드반을 묵묵히 먹어치운 A, 그 와중에 온갖 애교를 구사하며 우리를 웃게 했던 H, 그런 H를 무사히 집에 옮기느라 고생했던 A, 반 강제로 택시에 태워져 또 맥주를 마셔야했던 G,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봐야만 하는 B, 여우 같은 포메라니안을 입양해 예삐란 이름을 지어준 P, 그리고 어쩐지 들떠 택시 안에서도 사진을 찍어댔던 나. 한참을 깔깔대고 웃다가 문득, 이 여자들이 고맙고 대견하고 안쓰러워서 울 뻔했다. 언제 피었는지 피게 될지 자신은 알 수 없어도 서로에게 '너 지금 피어있어'라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그런 여자들. 앞으로도 계속 같이 늙어갔으면 좋겠다. 소주 1병이던 주량이 반병으로 줄고 또 한 두잔으로 줄때까지, 함께.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