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4. 19:34
종가집 묵은지 500g, 삼겹살 400g, 새송이버섯 3개, 마늘과 프랑스에서 건너온 이름모를 향신료, 그리고 소금 약간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급습을 하셨다. 느즈막이 일어나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있던 그와 나는 호되게 놀라 페브리즈를 쏟아 부었으나, 어머니는 금세 눈치채셨고, 그가 다 뒤집어쓴 채 1시간 가량 각종 잔소리 세트를 선물 받았다. 어머니의 잔소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음식이었는데, 제발 밥 좀 해 먹으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생활비도 가물고, 어머니의 잔소리에 자극도 받고, 모처럼 음식을 해먹기로 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재료 일체를 구입했다. 사실 무얼 만들어야 좋을지 몰라 동네 마트를 서너 차례 배회한 끝에 묵은지 찌개를 해 먹자는 결론을 내리고 재료를 구입한 것인데, 갑작스럽게 결정된 메뉴인만큼 자신이 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재료를 손질해 드디어 묵은지 찌개를 만드는 동안, 나는 왜 항상 술안주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밥 반찬을 만들겠다고 시작해놓고 완성된 것을 보면 늘 술안주였고, 늘 밥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도 묵은지 찌개는 끓고 끓어 완성되었고, 상차림을 마쳤을 때, 그는 묵은지 찌개보다는 담배를 피우고 먹을 것인가 먹다가 담배를 피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 술. 그의 첫 마디는 ‘기름지다’였다. 그랬다. 갑자기 결정된 요리에, 아무 생각 없이 목살 대신 삼겹살을 넣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말은 ‘목살을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맛있다’였다. 나는 별다른 내색 하지 않은채 묵묵히 술과 찌개를 입에 퍼 넣으며 생각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맛있다,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해줘 밖에 없다고 일러줬을텐데’라고. 점점 어두워지는 표정을 발견한 그가 물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대로 대답했다.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으나, 첫 마디가 비판이어선 안 되는 거라고. 그는 맛 없다는 게 아니니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반응을 보였다. 맛 없는 것을 맛있게 먹어도 모자랄 판에, 당당하기만 한 그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그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