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6. 22:20

올해 음주 생활에 가장 큰 변화라면 스스럼없이 맥주를 마시게 됐다는 것이다. 그 전에도 이따금씩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억지로라도, ‘내 사랑은 소주 뿐’이라며 돌아가는 눈길을 붙잡아 세우곤 했었다. 타의에 의해서 마시게 될 때면 소주가 더 좋다고 구시렁거렸고, 자의에 의해서 마시게 되는 경우는 그 술자리가 정말 싫거나 절대로 취하고 싶지 않은 경우였다. 조금씩 酒種에 너그러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왜 그것이 다른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자책하게 된다. 앞으로도 酒師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엊그제 밤에는 유난히 기운이 없었다. 속엣말로 ‘진짜 지쳤구나’라고 속삭일 정도로 까닭 없이 기운이 없었다. 실은 기운 없는 이유를 알고도 외면했다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자연스럽게 집에 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아사히 죽센을 마시고 싶었지만 제품명패만 있을 뿐, 아사히 죽센이 있어야 할 자리엔 그냥 아사히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네켄을 집어 들었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도전이 낫겠다는, 반항 아닌 반항심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추억의 과자 홈런볼을 안주 삼아 500ml짜리 하이네켄을 홀짝거리면서, 생각보다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맥주 한 캔을 비우고 한층 더 무거워진 몸뚱이를 침대에 뉘었는데, 천정에 얼룩이 져 있었다. 물이 샌 것이리라, 한없이 아련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어제 밤에는 (고작 하루 사이에)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또 하이네켄을 샀다. 그는 마지막 마감을 앞두고 밤샘을 해야 했고,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벌레와 맞닥뜨렸을 때 위로받을 것이 필요했고, 여느 때보다 더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안주도 없이 깡하이네켄을 마셨다. 소나기가 지나갔음에도 더웠고, 방은 한낮의 열기를 여태 품고 있었고, 상온에 민감한 내 몸도 뜨듯했고, 그렇다고 에어컨을 켜기는 또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안주가 없어도, 아니 안주가 없는 편이 나았다. 빠른 속도로 미지근해지는 하이네켄을 들이켜고 자리에 누운 시간이 새벽 2시. 천정의 얼룩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케케묵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들추다가 새벽 4시쯤 간신히 잠들었다. 누워 있는 나를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숙면은 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고, 헛헛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오늘도 하이네켄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하고 있다. 하이네켄이 필요하지 않다면… 버드와이저라든가 맥스라든가 디(d)라든가 호가든이라든가… 서양에서 건너온, 수강료 저렴한 酒師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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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