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9. 18:12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타이레놀 세 알로도 어쩌지 못하는 두통에 시달렸고, 날은 더웠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P의 생일이었다. 타이레놀이 해결해주지 못한 두통은 잠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집에서 쉰다고 잠이 방문해줄 것 같지 않았고, P의 달 같은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고, K에게 아양을 떨어 나를 약속장소까지 데려가 달라고 했다. 의외로 K가 선선히 나를 데리러 왔고 P의 술자리에 참석했다.
장소는 신림, 우리들이 사랑하는 술집 가운데 한 곳이었다. K와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P와 L이 차례로 도착했다. 안주가 매웠고, 그래서 자꾸 소주와 밥을 먹었고, 이미 배가 불렀지만 K가 P를 위해 만들어 온 브라우니 케이크를 자꾸 퍼먹었다. 어림잡아 한 병 가까이 마신 것 같았는데 취하지 않았고, 즐거운 술자리였음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2차는 의외로 노래방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노래방이었는데 안락한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번호를 눌러주는 대로 노래를 부르다 말다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 태어난 P에게 각종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 중에는 ‘겨울아이’도 있었다. 상반된 계절의 만남이었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그러고 다시 커피를 마시러 가선 깔루아 밀크를 마셨다. 깔루아 밀크는 너무 달았고,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K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혼자 해치웠고(정작 술자리에선 우유 1,000ml와 브라우니 케이크 하나를 먹고 왔으므로 안주를 얼마 안 먹었기 때문이라지만… 놀랍기는 매한가지), L은 다이어리를 꺼내 계속 무언가를 메모했고, P는 내가 만든 책과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계속 머리를 짚고 두통과 싸웠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산철교 위로 붉은 달이 걸려 있었다. ‘아… 씨발, 환장하겠네’ 욕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개찰구를 나와 터덜터덜 걸어가다 W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닌 밤중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깜짝 놀란 W와, S와 스튜디오에서 술을 조금 더 마셨다. W는 내가 불알친구보다 의지가 된다고 했고, 나는 과거의 주사를 미안해했고, 우리는 인연의 의외성에 공감했다. 나이 어린 S는 늦은 귀가로 혼날 것을 염려했고, 나는 아직 술이 모자랐지만 흔쾌히 집으로 돌아왔다. 맥주라도 한 캔 더 마실까, 잠시 고민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붉은 달이, 환장하리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TV를 보고, 오랜만에 일기를 조금 쓰고, 이제는 술로도 어쩌지 못하는 지경에 놓인 것을 한탄하며 자리에 누웠다. 두통은 여전했고, 잠은 오지 않았고, 어디선가 자꾸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잠든 아침, 그가 돌아왔다. 다시 깨어났고, 다시 잠들기 어려웠고, 다시 술을 생각하고 있다. 안주로는 뭐가 좋을까, 엄마가 붉은 고기에 철분이 많다고 했었는데, 고기가 좋을까… 채소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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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