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1. 15:06

점심의 아사히. 부드러운 소시지빵과 궁합이 예술이다.

자정의 삿포로. 매력적이다, 분명.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일어났다. 생채식을 무감각하게 씹어 삼키며 점심에는 오니기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가게는 아직 열지 않았다. 생각도 정리할 겸 파스타를 먹으며 노트 정리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가게에 파스타를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홧김에 파리X게트에서 빵을 사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공과금을 내러 온 아주머니가 계산대에 덩그러니 놓인 맥주를 자꾸 흘깃거렸다. 빈 사무실에서 빵과 맥주를 먹고 마셨다. 머리만 아프지 않았어도 기분 괜찮았을 것이다. 급하게 들어온 일을 처리하고, 미뤄두었던 일도 처리하고, 남아 있는 일 중에 어느 것부터 처리할지 고민하다 연극을 보러갔다. 공짜의 유혹은 언제나 강력한 것이고, 공부도 해야 했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 닭고기와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이 곳의 생맥주는 400cc와 700cc 두 종류뿐이었는데, 뭔가 못마땅했다). 그리고는 즐겁게 연극을 보았다. 사실, 즐겁지 않았다. 무대 곳곳을 불안하게 보고 또 보느라 몰입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집에 돌아왔다. 향꽂이와 플라스틱 컵 속에 가둬놓은 벌레 두 마리는 여전했고, 방 안은 참을 수 없이 조용했고, 자연스럽게 맥주 한 캔을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브의 시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어쩐지 이것도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울었을까) 한 캔을 비웠다. 잠시 더 마실지 고민하다 책 한 권을 빼들고 침대에 누웠다. 집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잠은 오지 않았고, ‘바나나맨’은 계속 오해를 받고 있었다. 천정의 비 얼룩이 서글펐고, 벽에 숨은 곰팡이가 가증스러웠고, 뱃속의 맥주가 서서히 미지근해지고 있는 게 서운했다. 계속 ‘자격지심’이라는 네 글자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미흡한가. 분명 사람을 얻었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사람이… 문제다. 나라는 인간도 내가 얻었다고 좋아하던 사람도 모두 문제다. 쌍방과실이니 없던 일로 퉁치자고 해도, 그렇게 한다고 해도 기분이 탐탁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소주를 마셔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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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