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17:19


야심차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그저 내버려 두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로지 술과 사람에 집중하는 탓에 사진 찍을 정신머리는 없었기도 하거니와, 그런 정신머리를 갖추게 것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블로그를 잊어가는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혹독한 가을을 보냈고, 쥐어짜야만 하는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봄,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렸다. 무모하게 연출도 두지 않고 객기 부리듯 밀어 부쳤던 공연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툭하면 연습 핑계로 배우들과 술을 마시고, 4일 간의 공연을 마쳤다. 물론 스탭들과 뒷풀이를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들과 뒷풀이를 했다. 술, 술의 연속이었고 한 번 마셨다 하면 동 트는 건 예사였다. 그래도 뭔가 털어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모처럼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알았다. 혼자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는 걸.
딱히 정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들을 만큼 들었고, 생각할 만큼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했다. 오랜만에 미뤄두었던 1984년 산 셜록홈즈를 보면서, 맥주 한 캔에 베이컨에삐를 턱이 뻐근하도록 씹어대면서, 호젓하다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허전했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어서, 되도록이면 빨리 이 生이 끝났으면 해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면 가능한 빨리 후닥닥 써버리고 끝났으면 싶어서. 성격만 급해서 될 일이 아닌데도….
최근의 화두는 <무한도전>이다. 시덥지 않든 대단하든 무모하든 당연한 것이든 계속 무언가를 한다. 빠듯한 스케쥴을 쪼개 스포츠댄스를, 에어로빅을, 조정을 연습하고 결승점에 도착해서는 펑펑 울어 제낀다.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은 요즘이다. 그런 기분을 알아주었으면 싶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서 맥주 500ml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느꼈다.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아사히가 유난히 달았다. 욕심 부리지 말자, 는 결론을 내리고 더 마시고 싶은 충동을 참았더랬다.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