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5. 16:32

매우 전위적인 치킨과 샐러드의 모습이지만 상당히 맛 좋은 치킨, 간장순살치킨이었다. 그 날도 역시 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 예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당시를 추억하며 술을 마시자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곳저곳 마음에 드는 곳을 기웃거리다 '아띠꼬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추억의 술집에 들어갔다. '우쭈쭈쭈~'하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 같은 술집에서, 때마친 들어온 가족 손님을 피해 문가 자리로 옮겨 앉아 치킨이 나오길 기다리며, 이 술집이 개명하기 이전의 모습을 회상했다. 가족 손님은 홀 구석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악마같은 애들이 셋이나 있어 적지 않게 시끄러웠으며, 심지어 생일파티까지 벌여 신경을 긁어댔고, 그 와중에도 그와 나는 아이가 가진 마성과, 기자라는 직업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국 소주 한 병으로는 이야기도, 안주도 모두 비울 수 없어 한 병을 더 시키고, 때마침 일어서는 가족 손님 중 우연히 눈이 마주친 계집아이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고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도 한 번 노려봐 주었다(이렇게 노려볼 수라도 있게 되는 데에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아주길).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즐거운 술자리였다.
 

역시 매우 전위적인 순살간장치킨과 소주의 사진이다. 소주는 늘 '처음처럼'을 고집한다. 이름보다도 몇 년째 '처음처럼' 이 술을 권하는 효리 언니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취가 조금 덜하기 때문이다. 사실, 치킨에는 단연 맥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나는 치킨에도 소주라고 주장하고 싶다. '치맥'이 아니라 '치소'. 아무리 담백한 치킨이라고 해도 닭가슴살만 뜯어 먹지 않고서는 느끼할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나는 기름기 많은 부위를 즐기는 편인데, 치킨 한 입 먹고 소주 한 모금 털어 넣으면 입안이 단박에 개운해져, 두 번째 세 번째 치킨 조각도 처음처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미각이 예민한 요리사들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때 물로 입을 헹구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한 친구는 치킨에 소주를 마시자는 나의 의견에 눈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는데, 어쩄든 치소를 접한 뒤 이와 같은 조합도 괜찮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는 사실을 끝으로 오늘의 주정을 접는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