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4. 18:04
그런 날이 있다. 책상 아래로 스민 한기가 발목을 휘감아 돌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향하는 곳은 술 파는 곳, 어디라도 간다. 아직 술 파는 곳에 혼자갈만한 내공을 쌓지 못해 일행을 구했다. K에게 제안하자, K는 L도 부르자고 했다. K의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 가서 오뎅탕과 소주를 시키고, L은 축구 연장전이 끝나면 나오겠다고 했다. 오뎅탕이 나오기 전에 3잔의 술을 비웠고, 기본 안주로 나온, 어딘가 빈티지한 두부 같은 접시에 담긴 두부를 먹었다. 오뎅탕이 나온 그 순간 L이 나타났다. 오뎅탕은 맛있었지만 오뎅 개수가 몇 안 되었고, 배가 고팠던 우리는 고기 빈대떡을 추가했다. 고기 빈대떡이 사라질즈음 서비스로 석화 한 접시가 나왔다. 역시, 인맥이란, 소중한 것이다. 석화 한 접시를 모두 비우고도 모자라 고기 빈대떡을 추가했다. 연평도니 전쟁이니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자정을 30분 정도 넘긴 시간, K의 계산을 끝으로 1차도 끝났다.

뭔가 빈티지한 두부 그릇 속의 두부와 오뎅탕의 잔해. 작은 표고버섯의 3분의 1이 남을 때까지 오뎅탕 찍을 생각을 못했다.


K와 나는 1차 계산을 서로 하겠다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고, 승리한 K가 2차를 제안했고, 우리는 또 다른 술집으로 몰려갔다. K는 맥주를, L은 라즈베리 주스를, 나는 라즈베리 보드카를 마셨다. 우리는 어느덧 어두운 세상 일은 잊고 연애 이야기에 몰두했다. 나는 어쩐지 K가 L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므로 더 없이 즐거운 상상이었다. 연장전을 보고 오겠다는 L을 기다리며 독촉하던 K의 모습에서부터 이 발칙한 상상이 시작됐는데, L은 K의 관심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했고, K는 L에 대한 호감의 성분을 분석 중인 듯 했다.


먹고 또 먹어도 맛있던 고기 빈대떡과 서비스로 나온 석화. 석화는 예의상 하나만 먹었다. 난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마시니 함께 즐거워야겠지만,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나는 늘 남자와 여자 사이에 흐르는,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애정전류를 상상하며 혼자 즐거워 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K와 L이 알면 펄쩍 뛰겠지만, 나는 그 두 사람이 연애를 하든 각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든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들이고, 술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이 연애니까.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