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7. 16:27

무엇이든 시작은 성실하리라 다짐을 하게 되곤 하지만, 특히 이 블로그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주제를 담고 있으므로,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를 하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이 쉽지. 마지막으로 안주를 기록한 날로부터 십 여일이 지났고, 그 사이에도 꼬박꼬박 술은 마셨지만 기록은 하지 못했고 -안주가 비루하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고 버릇이 안 들어 뭘 먹을 때마다 카메라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어쨌든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남긴다.

△ 돼지고기 튀김. 얼핏보면 소스를 입히지 않은 닭강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후추의 알싸한 매콤함이 일품이다

그 날은 그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할 요량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식상해진 메뉴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문득 오래전의 추억하나를 건져 올려 발길을 옮겼던 것도 같다. 홍대 뒷골목에 있는 중국요리집에 도착한 시간은 무려 오후 5시. 여느 중국집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메뉴판을 뚫어버릴 기세로 살펴보다 고른 것이 돼지고기 튀김이었다. 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외식이니만큼 뭔가 성대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가장 저렴한 돼지고기 튀김과 깐쇼새우를 대신해 새우볶음밥을 하나 시켰고,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밑반찬으로 나온 땅콩볶음과 오이로 추정되는 나물무침 같은 것을 오독오독 먹고 있었다.

드디어 요리가 나오고, 후추를 뿌린 돼지고기 튀김은 탕수육에서 소스만 뺀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굉장히 맛있었다. 푸짐하기까지한 안주 덕분에 순식간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소주 두 병을 비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의미 있고, 심도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매번 다른 주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든 늘 해야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는 둘도 없이 좋은 술 친구다.
 
길이길이 남을 돼지고기 튀김, 길이길이 남을 중국집. 다음 번에는 기필코 코스요리에도 도전하리라.







◁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기꺼이 그가 젓가락을 대어 포즈를 취해주었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