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 16:01
오랜만에 집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약 8.4km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반환점인 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배고파’, 돌아오는 내내 주절댄 것은 ‘나 졸려’였다. 반환점을 돌아 처음 가보는 길로 접어들고 나서 으레 그렇다는 듯 술집을 찾아들었고, 홍대 기차길 옆에 줄지어 늘어선 백반집 가운데 김치찌개 집엘 들어가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전체적으로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였고, 홀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닉쿤과 빅토리아가 달달한 가상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알딸딸하게 취해 집으로 들어와 <황진이> 재방송을 보다 문득, 심지어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가 남은 소주에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했다. 소주가 얼마 없으니 자기 혼자 먹어치우겠다는 그의 말이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여자이므로, 술에 약한 동물이므로, 모든 위험은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감언이설. 이렇게 치사한 발언을 내뱉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그는, 무사할 수밖에 없는 위치-남편이라는-에 있었음에도 무사히 두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고 내가 술을 안 먹을 줄 알고. 지난해 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아온 와인을 호기롭게 땄다(그 와중에 어쩐지 보드카는 아까웠는데, 심지어 섞어 마실 주스도 없었다). 와인 한 모금, 라면 국물 한 모금. 와인을 마시고 라면 국물을 마시면 라면 국물 맛이 이상하고, 라면 국물을 마시고 와인을 마시면 와인 맛이 이상했다. 그렇게 이상한 맛을 내는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을 맞았다.


 

 ← 토요일 밤의 이상한 와인. 심지어 백포도주였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