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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2 고기가 좋아
  2. 2010.11.17 돼지고기 튀김과 소주를 마시다
  3. 2010.11.05 간장순살치킨과 소주를 마시다
  4. 2010.11.02 백포도주를 마시다
  5. 2010.11.01 궁중떡볶이와 소주를 마시다
2010. 11. 22. 03:04

술을 마실 때는 소주, 소주를 마실 때는 고기를 먹는다. 고기라면 가리지 않고 먹지만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두툼하고 기름진 고깃덩이! 제주도에 가서도 3박 4일 내내 회는 입에도 대지 않고 돼지, 돼지, 돼지의 나날을 보냈었다. 하루는 삼겹살, 하루는 모듬, 하루는 도가니. 아, 고기. 머리부터 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돼지고기. 소고기처럼 인정머리 없이 기름기 하나 없는 것은 싫다(집에서는 고기에 붙은 기름이란 기름은 모두 잘라내고 먹었는데, 그토록 인정머리 없는 집안에서 나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소고기도 기름기 충만한 부위가 있겠지만 돼지고기에 비할까.
한때, 어린시절의 섭식 습관 때문이겠지만, 돼지갈비를 주로 먹곤 했지만 지금은 주로 삼겹살을 먹는다. 오겹살이면 더 좋고. 불판에 척, 올렸을 때 알맞게 달궈진 불판이 치이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 일단 소주 일잔. 반쯤 익었을 때 심심하니까 또 일잔, 다 익으면 익었으니까 일잔. 고기가 익기도 전에 소주 석잔을 비우는 걸 보면 아무래도 고기보다는 술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빗소리를 들으니 술이 땡긴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탐스러운 고기와 함께.

사진은 정확히 어디라고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절두산공원 근처 주먹고기집. 아, 탐스러운 고기와 참이슬 옷을 입은 처음처럼과 이글거리는 불빛. 배고프다. 술고프다. 
Posted by izayoi
2010. 11. 17. 16:27

무엇이든 시작은 성실하리라 다짐을 하게 되곤 하지만, 특히 이 블로그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주제를 담고 있으므로,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를 하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이 쉽지. 마지막으로 안주를 기록한 날로부터 십 여일이 지났고, 그 사이에도 꼬박꼬박 술은 마셨지만 기록은 하지 못했고 -안주가 비루하기도 했고 귀찮기도 했고 버릇이 안 들어 뭘 먹을 때마다 카메라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어쨌든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남긴다.

△ 돼지고기 튀김. 얼핏보면 소스를 입히지 않은 닭강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후추의 알싸한 매콤함이 일품이다

그 날은 그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할 요량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식상해진 메뉴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문득 오래전의 추억하나를 건져 올려 발길을 옮겼던 것도 같다. 홍대 뒷골목에 있는 중국요리집에 도착한 시간은 무려 오후 5시. 여느 중국집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메뉴판을 뚫어버릴 기세로 살펴보다 고른 것이 돼지고기 튀김이었다. 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외식이니만큼 뭔가 성대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가장 저렴한 돼지고기 튀김과 깐쇼새우를 대신해 새우볶음밥을 하나 시켰고,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밑반찬으로 나온 땅콩볶음과 오이로 추정되는 나물무침 같은 것을 오독오독 먹고 있었다.

드디어 요리가 나오고, 후추를 뿌린 돼지고기 튀김은 탕수육에서 소스만 뺀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굉장히 맛있었다. 푸짐하기까지한 안주 덕분에 순식간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소주 두 병을 비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의미 있고, 심도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매번 다른 주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든 늘 해야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는 둘도 없이 좋은 술 친구다.
 
길이길이 남을 돼지고기 튀김, 길이길이 남을 중국집. 다음 번에는 기필코 코스요리에도 도전하리라.







◁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기꺼이 그가 젓가락을 대어 포즈를 취해주었다

Posted by izayoi
2010. 11. 5. 16:32

매우 전위적인 치킨과 샐러드의 모습이지만 상당히 맛 좋은 치킨, 간장순살치킨이었다. 그 날도 역시 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 예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당시를 추억하며 술을 마시자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곳저곳 마음에 드는 곳을 기웃거리다 '아띠꼬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추억의 술집에 들어갔다. '우쭈쭈쭈~'하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 같은 술집에서, 때마친 들어온 가족 손님을 피해 문가 자리로 옮겨 앉아 치킨이 나오길 기다리며, 이 술집이 개명하기 이전의 모습을 회상했다. 가족 손님은 홀 구석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악마같은 애들이 셋이나 있어 적지 않게 시끄러웠으며, 심지어 생일파티까지 벌여 신경을 긁어댔고, 그 와중에도 그와 나는 아이가 가진 마성과, 기자라는 직업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국 소주 한 병으로는 이야기도, 안주도 모두 비울 수 없어 한 병을 더 시키고, 때마침 일어서는 가족 손님 중 우연히 눈이 마주친 계집아이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고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도 한 번 노려봐 주었다(이렇게 노려볼 수라도 있게 되는 데에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아주길).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즐거운 술자리였다.
 

역시 매우 전위적인 순살간장치킨과 소주의 사진이다. 소주는 늘 '처음처럼'을 고집한다. 이름보다도 몇 년째 '처음처럼' 이 술을 권하는 효리 언니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취가 조금 덜하기 때문이다. 사실, 치킨에는 단연 맥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나는 치킨에도 소주라고 주장하고 싶다. '치맥'이 아니라 '치소'. 아무리 담백한 치킨이라고 해도 닭가슴살만 뜯어 먹지 않고서는 느끼할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나는 기름기 많은 부위를 즐기는 편인데, 치킨 한 입 먹고 소주 한 모금 털어 넣으면 입안이 단박에 개운해져, 두 번째 세 번째 치킨 조각도 처음처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미각이 예민한 요리사들이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때 물로 입을 헹구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나 할까. 한 친구는 치킨에 소주를 마시자는 나의 의견에 눈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는데, 어쩄든 치소를 접한 뒤 이와 같은 조합도 괜찮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는 사실을 끝으로 오늘의 주정을 접는다.
Posted by izayoi
2010. 11. 2. 16:01
오랜만에 집에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약 8.4km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반환점인 월드컵경기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배고파’, 돌아오는 내내 주절댄 것은 ‘나 졸려’였다. 반환점을 돌아 처음 가보는 길로 접어들고 나서 으레 그렇다는 듯 술집을 찾아들었고, 홍대 기차길 옆에 줄지어 늘어선 백반집 가운데 김치찌개 집엘 들어가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전체적으로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였고, 홀에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닉쿤과 빅토리아가 달달한 가상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알딸딸하게 취해 집으로 들어와 <황진이> 재방송을 보다 문득, 심지어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가 남은 소주에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했다. 소주가 얼마 없으니 자기 혼자 먹어치우겠다는 그의 말이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여자이므로, 술에 약한 동물이므로, 모든 위험은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감언이설. 이렇게 치사한 발언을 내뱉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그는, 무사할 수밖에 없는 위치-남편이라는-에 있었음에도 무사히 두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고 내가 술을 안 먹을 줄 알고. 지난해 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아온 와인을 호기롭게 땄다(그 와중에 어쩐지 보드카는 아까웠는데, 심지어 섞어 마실 주스도 없었다). 와인 한 모금, 라면 국물 한 모금. 와인을 마시고 라면 국물을 마시면 라면 국물 맛이 이상하고, 라면 국물을 마시고 와인을 마시면 와인 맛이 이상했다. 그렇게 이상한 맛을 내는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을 맞았다.


 

 ← 토요일 밤의 이상한 와인. 심지어 백포도주였다.
Posted by izayoi
2010. 11. 1. 18:02
지난 목요일, 무언가 요리를 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 궁중 떡볶이 재료를 샀다. 그리고 금요일, 궁중 떡볶이 생각에 몸이 달아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가 요리를 시작했다. 떡은 물에 담가 놓고 양송이와 파프리카를 씻어 적당히 자르고, 부위를 알 수 없는 고기에 다진 마늘을 넣어 볶다가 향신 간장을 조금 넣고, 양송이와 파프리카를 넣고. 불린 떡과 간장, 물을 더 넣고 졸였다. 그리고 완성. 그럴듯한 모양새에 그는 '괜찮네'라고, 시크하고 짤막한 감상평을 덧붙였다. 물론, 궁중 떡볶이를 식사 대용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술을 먹어야겠는데, 뭔가 정성이 담긴 안주를 곁들이고 싶었고, 오랜만에 요리를 하고 싶었고, 그렇다고 레시피를 검색해 그대로 요리하는 성격도 아니고, 당연하게도 양 조절은 언제나 실패해 대략 3~4인분의 궁중 떡볶이가 만들어졌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새우탕 컵라면을 곁들여 소주 한 페트를 비우고야 말았다.
늘, 손이 큰 것이 문제다.


문제의 궁중 떡볶이. 예쁜 접시에 담아 우아하게 먹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