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삿포로. 매력적이다, 분명.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일어났다. 생채식을 무감각하게 씹어 삼키며 점심에는 오니기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가게는 아직 열지 않았다. 생각도 정리할 겸 파스타를 먹으며 노트 정리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가게에 파스타를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홧김에 파리X게트에서 빵을 사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공과금을 내러 온 아주머니가 계산대에 덩그러니 놓인 맥주를 자꾸 흘깃거렸다. 빈 사무실에서 빵과 맥주를 먹고 마셨다. 머리만 아프지 않았어도 기분 괜찮았을 것이다. 급하게 들어온 일을 처리하고, 미뤄두었던 일도 처리하고, 남아 있는 일 중에 어느 것부터 처리할지 고민하다 연극을 보러갔다. 공짜의 유혹은 언제나 강력한 것이고, 공부도 해야 했다. 연극을 보러 가기 전, 닭고기와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이 곳의 생맥주는 400cc와 700cc 두 종류뿐이었는데, 뭔가 못마땅했다). 그리고는 즐겁게 연극을 보았다. 사실, 즐겁지 않았다. 무대 곳곳을 불안하게 보고 또 보느라 몰입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집에 돌아왔다. 향꽂이와 플라스틱 컵 속에 가둬놓은 벌레 두 마리는 여전했고, 방 안은 참을 수 없이 조용했고, 자연스럽게 맥주 한 캔을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브의 시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어쩐지 이것도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울었을까) 한 캔을 비웠다. 잠시 더 마실지 고민하다 책 한 권을 빼들고 침대에 누웠다. 집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잠은 오지 않았고, ‘바나나맨’은 계속 오해를 받고 있었다. 천정의 비 얼룩이 서글펐고, 벽에 숨은 곰팡이가 가증스러웠고, 뱃속의 맥주가 서서히 미지근해지고 있는 게 서운했다. 계속 ‘자격지심’이라는 네 글자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미흡한가. 분명 사람을 얻었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사람이… 문제다. 나라는 인간도 내가 얻었다고 좋아하던 사람도 모두 문제다. 쌍방과실이니 없던 일로 퉁치자고 해도, 그렇게 한다고 해도 기분이 탐탁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소주를 마셔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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