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1. 17:19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고기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고기를 찾는 사람들’은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과 그 밖의 소소한 공통점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모임을 결성할 당시에는 매월 1회 모임을 갖기로 했었는데 회계를 맡고 있던 나의 관리 소홀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바빴으니까- 점차 뜸해졌는데 그래도 일년에 서너 번쯤은 만난다.

맑은 국물의 정의에 대해 L과 J가 말싸움을 벌이게 만들었던 문제의(혹은 맛있는) 일본식 부대찌개


어쨌든 오랜만에 만나 미식가 K의 추천으로 일본식 부대찌개 전문점이라는 이로리에서 1차를 시작해 무넹기를 거쳐 이름 모를 맥주집까지 전전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는 L과 H, 연애를 하게 됐다는 D, 미식가이자 아빠가 될 K까지 깔깔대고 웃느라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셈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조금 취했다. 별별 소소한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어댔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러니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으나, 좋은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게 마련이고 만나게 되기 마련이고 오래오래 관계를 이어가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 오래오래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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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7. 4. 15:13
아주 오랜만에 홈플러스에 갔다. 오랜만에 희끄무레한 하늘 아래로 바람이 불었고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월드컵경기장까지는 대략 4킬로미터. 걷기 좋은 거리다. 컨디션이 허락한다면 왕복으로도 거뜬히 걸을 수 있는 거리다. 홈플러스 홈페이지에서 시뮬레이션한 비용보다 7만원 정도 더 썼는데, 리스트에 없는 물건이라고는 수입 맥주와 몇 가지 먹을거리뿐이어서 깜짝 놀랐다.


수입 맥주 5명을 1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5병을 고르고, 5병을 더 고를까 하다가 예산 걱정도 아니고 무게 걱정 때문에 참았다. 5병의 맥주는 맛과 가격을 떠나 순전히 디자인만 보고 골랐다. 그러다 보니 전부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건담 프라 모델을 넣어두는 장식장 위에 5병의 맥주를 -이 장식장이라는 것도 와인 상자를 재활용한 것이다- 늘어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단 시원해져야 했으므로, 그동안 미뤄 두었던 냉장고 성에까지 제거하고 -성질도 급해 두꺼운 얼음을 마구 뜯어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냉동 기능은 없지만 냉동실처럼 생긴 칸에 맥주들을 넣어 두었다. 그리고 일요일 점심에 한 병, 저녁에 한 병을 마셨다.
맥주는 다른 술과 달리 마음 편히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술이기도 한데, 그가 맥주를 즐기지 않으므로 ‘누가 더 많이 마시나’를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과연, 맥주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더라.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수입 맥주의 맛을 기억한다 해도 다시 찾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겨우 3병 남았고, ‘수입 맥주 5병에 1만원’은 6일이면 끝이 나고, 자꾸 맥주 생각이 난다. 기간 내에 입금이 된다면, 그리고 또 걷고 싶어진다면, 몇 병 더 쟁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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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0. 16:40

사흘간의 공연이 끝나고, 누군가에 의해 시간이 지워지기라도 한 것 같았는데, 그걸 미처 모르고 지낼 만큼 단련이 된 건지 마음을 놓아버린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공연이 끝나고, 스튜디오 식구들과 1층 카페 누나들과 조촐히 또 한 번의 회식을 했다. 시작은 좋았다. 고기에 소주를, 기분 좋을 만큼 마셨고 2차로 또 소주를 마셨다. 어쩐지 누구와든 수다를 떨고 싶어 B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울고 말았다. 골목 어딘가에서 한참을 울먹이며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웬 남자가 담배를 물고 나타나 손에 휴지를 쥐어주었다. ‘시끄러우니 다른 데 가서 마저 울라’고. 그걸 또 B에게 생중계를 하며 화장실에 휴지를 버리곤 조금 더 울다가 다시 술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 없던 듯 또 술을 마시고 억지로 끌려간 노래방에서 맥주와 함께 두 곡이나 부르고, 갑자기 떨어지는 장마비와 함께 새벽 즈음 집으로 돌아왔다.













B와 통화를 하면서는 제법 쿨하게 웃어넘겼는데 집에 돌아오니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 절박함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귀찮은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누군가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일이다. 갈 데 없는 손가락질을 끌어안고 잠들 던 밤, 기억 속에 깊이 박혀버린 그 한 잔의 술은 술로 지우는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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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6. 28. 12:14
지난 목요일 이전부터도 나름대로는 강행군이었지만, 목요일부터는 정신적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목요일, 콘서트를 위한 설치 작업을 마치고 테스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로 다른 확장자명을 가진 파일들의 호환을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묵혀 두었던 와이브로가 빛을 보았다) 곰플레이어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와 MP4와 WMV와 각종 코덱과… 노트북 속 ‘0’과 ‘1’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출구를 찾았다. 자정 가까운 시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야했는데, 10분 사이에 잊어버린 채 집에 돌아와 슬픔에 잠겨 잠들었다.



금요일, 드디어 콘서트 시작. ‘한 회에 하나의 실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임했던 영성 오퍼레이터였건만 실수연발이었다. 음향과 조명, 그리고 가수까지 골고루 실수를 해 준 덕분에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용납할 수 없었다기 보다는 아쉽기 그지없었다. 엎질러진 물 닦으면 그만이니 ‘용납’의 문제는 애초에 적용할 수 없었으므로. 하루 종일 타이레놀 세 알로 간신히 버틴 후 드디어 맥주를 샀다. 오비골든라거,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생각만큼 맛있지가 않아서 피로는 여전했다.
토요일, 드디어 발생 가능한 변수를 모두 손에 쥐었다. 그래도 지랄맞은 성격은 잔뜩 곤두서서는 또 타이레놀을 요구했는데, 지켜보던 프로젝터 기사가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두 번의 공연을 치르고, 그 와중에 총감독은 자꾸 자리를 비우고, 외로웠지만 외로워서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 걸을 힘도 없는 주제에 맥주를 사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신기신 편의점에 들러 코로나엑스트라를 샀다. 안주도 없이 순식간에 한 캔을 비우고, 500ml를 살 걸 그랬나 잠시 후회한 뒤에 기절하듯 잠이 들긴 들었는데 내내 뒤척였다.
일요일,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상영을 하면서 조금 울컥했다. 내친 김에 조금 울어볼까도 싶었는데 가수들이 먼저 울어버렸다. 지랄맞은 성격은 여전히 타이레놀을 요구했지만 곧 뒷풀이를 할 거였고, 곧 소주를 마실 거였으므로 외면했다. 드디어 뒷풀이, 두 병 가량의 소주를 들이붓고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정신없이 나흘을 보내고 나니, 생애 첫 영상 오퍼레이터의 추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다만, 맥주의 효용가치를 찾은 기분이다. 그걸로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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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19. 18:12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타이레놀 세 알로도 어쩌지 못하는 두통에 시달렸고, 날은 더웠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P의 생일이었다. 타이레놀이 해결해주지 못한 두통은 잠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집에서 쉰다고 잠이 방문해줄 것 같지 않았고, P의 달 같은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고, K에게 아양을 떨어 나를 약속장소까지 데려가 달라고 했다. 의외로 K가 선선히 나를 데리러 왔고 P의 술자리에 참석했다.
장소는 신림, 우리들이 사랑하는 술집 가운데 한 곳이었다. K와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P와 L이 차례로 도착했다. 안주가 매웠고, 그래서 자꾸 소주와 밥을 먹었고, 이미 배가 불렀지만 K가 P를 위해 만들어 온 브라우니 케이크를 자꾸 퍼먹었다. 어림잡아 한 병 가까이 마신 것 같았는데 취하지 않았고, 즐거운 술자리였음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2차는 의외로 노래방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노래방이었는데 안락한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번호를 눌러주는 대로 노래를 부르다 말다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 태어난 P에게 각종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 중에는 ‘겨울아이’도 있었다. 상반된 계절의 만남이었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그러고 다시 커피를 마시러 가선 깔루아 밀크를 마셨다. 깔루아 밀크는 너무 달았고,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K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혼자 해치웠고(정작 술자리에선 우유 1,000ml와 브라우니 케이크 하나를 먹고 왔으므로 안주를 얼마 안 먹었기 때문이라지만… 놀랍기는 매한가지), L은 다이어리를 꺼내 계속 무언가를 메모했고, P는 내가 만든 책과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계속 머리를 짚고 두통과 싸웠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산철교 위로 붉은 달이 걸려 있었다. ‘아… 씨발, 환장하겠네’ 욕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개찰구를 나와 터덜터덜 걸어가다 W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닌 밤중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깜짝 놀란 W와, S와 스튜디오에서 술을 조금 더 마셨다. W는 내가 불알친구보다 의지가 된다고 했고, 나는 과거의 주사를 미안해했고, 우리는 인연의 의외성에 공감했다. 나이 어린 S는 늦은 귀가로 혼날 것을 염려했고, 나는 아직 술이 모자랐지만 흔쾌히 집으로 돌아왔다. 맥주라도 한 캔 더 마실까, 잠시 고민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붉은 달이, 환장하리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TV를 보고, 오랜만에 일기를 조금 쓰고, 이제는 술로도 어쩌지 못하는 지경에 놓인 것을 한탄하며 자리에 누웠다. 두통은 여전했고, 잠은 오지 않았고, 어디선가 자꾸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잠든 아침, 그가 돌아왔다. 다시 깨어났고, 다시 잠들기 어려웠고, 다시 술을 생각하고 있다. 안주로는 뭐가 좋을까, 엄마가 붉은 고기에 철분이 많다고 했었는데, 고기가 좋을까… 채소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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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6. 16. 22:20

올해 음주 생활에 가장 큰 변화라면 스스럼없이 맥주를 마시게 됐다는 것이다. 그 전에도 이따금씩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억지로라도, ‘내 사랑은 소주 뿐’이라며 돌아가는 눈길을 붙잡아 세우곤 했었다. 타의에 의해서 마시게 될 때면 소주가 더 좋다고 구시렁거렸고, 자의에 의해서 마시게 되는 경우는 그 술자리가 정말 싫거나 절대로 취하고 싶지 않은 경우였다. 조금씩 酒種에 너그러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왜 그것이 다른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자책하게 된다. 앞으로도 酒師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엊그제 밤에는 유난히 기운이 없었다. 속엣말로 ‘진짜 지쳤구나’라고 속삭일 정도로 까닭 없이 기운이 없었다. 실은 기운 없는 이유를 알고도 외면했다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자연스럽게 집에 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아사히 죽센을 마시고 싶었지만 제품명패만 있을 뿐, 아사히 죽센이 있어야 할 자리엔 그냥 아사히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네켄을 집어 들었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도전이 낫겠다는, 반항 아닌 반항심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추억의 과자 홈런볼을 안주 삼아 500ml짜리 하이네켄을 홀짝거리면서, 생각보다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맥주 한 캔을 비우고 한층 더 무거워진 몸뚱이를 침대에 뉘었는데, 천정에 얼룩이 져 있었다. 물이 샌 것이리라, 한없이 아련한 기분으로 잠들었다.

어제 밤에는 (고작 하루 사이에)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또 하이네켄을 샀다. 그는 마지막 마감을 앞두고 밤샘을 해야 했고,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벌레와 맞닥뜨렸을 때 위로받을 것이 필요했고, 여느 때보다 더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안주도 없이 깡하이네켄을 마셨다. 소나기가 지나갔음에도 더웠고, 방은 한낮의 열기를 여태 품고 있었고, 상온에 민감한 내 몸도 뜨듯했고, 그렇다고 에어컨을 켜기는 또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안주가 없어도, 아니 안주가 없는 편이 나았다. 빠른 속도로 미지근해지는 하이네켄을 들이켜고 자리에 누운 시간이 새벽 2시. 천정의 얼룩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케케묵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들추다가 새벽 4시쯤 간신히 잠들었다. 누워 있는 나를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숙면은 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고, 헛헛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오늘도 하이네켄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하고 있다. 하이네켄이 필요하지 않다면… 버드와이저라든가 맥스라든가 디(d)라든가 호가든이라든가… 서양에서 건너온, 수강료 저렴한 酒師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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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6. 13. 21:38


와인이라면 선물 받은 것, 남이 사주는 것 외에는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와인이 비싸다기 보다 ‘포도즙’은 어쩐지 술이라기 보다 음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가기는 곧 죽어도 싫고, 술은 마시고 싶을 때 쟁여 두었던 와인을 마시곤 했는데 이 날은 vmspcae 10주년 기념 파티에 참석하는 바람에 와인을 마시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 이상으로 흡족했다. 화이트와 레드를 종류 별로 맛보았고, 와인을 물마시듯 마신다고 무안 주는 사람도 없었고, 초대한 이가 살갑게 맞아 주었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고, 공간이 아름다웠다. 나 같은 사람은 길 잃어버리기 딱 좋은 구조였지만 벽돌, 벽돌이 있었다. 벽돌이 훤히 보이는 집은 어쩐지 공기가 잘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내에 있어도 상쾌한 느낌이 드는지라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와인 사진 대신 벽돌이 차곡차곡 쌓인 복도 계단 사진을 올린다. 다시 본론으로,
와인시음회나 다름없었던 이 날의 술자리는 와인에 대한 편견을 조금 바꾸어 주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공간에서 마시면, 와인이나 소주나 맥주나 술맛은 좋기만 하다는 진리를 일깨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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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6. 6. 15:37

친하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말없이 소주를 마셔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무슨 말을 하며 소주를 마셔도 즐거운 사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비추어 보아, 친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인물과 술을 마시게 됐다. 대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술을 마시게 되는 건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다거나, 무언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무언가 부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거나. 어쨌든, 조금 덜 어색할 수 있을까 해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생고기와 소주를 마셨다.

어색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있을 때, 소주를 조금 급하게 마시게 되는데, 그 날도 그랬다. 잔은 비워지기가 무섭게 채워지고, 채워지기가 무섭게 비워지고 있었다. 한 병을 비우고, 두 번째 병을 반쯤 비웠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단아하다 싶은 단발, 단정하다 싶은 청바지와 티셔츠, 무엇보다 착해 보이는 보디라인까지 한 눈에 반해버릴 만큼 이상적인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불도 끈 마당에, 불판 위에 고기도 몇 점 없는 마당에 음식 사진을 찍는 척 그녀를 몰래 촬영했다.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아니고, SNS에 사연을 올려 그녀를 찾을 것도 아닌 마당에. 단순한 탐미주의의 발현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뭔가 떨떠름한 이 충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란 사람을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필요하다 싶다. 당장 결론이 나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탐미주의자일 뿐.


어쨌든 그 날의 술자리에서 오랜만의 고기보다 소주보다 그녀가 더 기억에 남는 건 술자리 후 그와 말다툼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아름다움에 관한 내 취향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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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5. 24. 19:53
생각해보니 자가주유가 처음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종종 혼자 술은 마셨으니까. 집에서 혼자 마실 때는 소주, 와인, 맥주를 가리지 않았었다. 다만 소주가 좋아 소주를 선택하는 날이 더 많았을 뿐.
어쩌다 하루에 반 이상을 기거하는 스튜디오에 혼자 남았다. 오후 7시를 넘은 시간에 혼자 있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함께 기거하는 다른 분들은 제각기 일정이 있어 외출했기 때문이다. 최근 스튜디오에 회계 담당 및 매니저로 취직하며 월급으로 월세를 제하는 대신 주급으로 술을 받기로 했었는데, 오늘이야 말로 그 주급을 받자고 마음먹었는데, 정작 주급 주실 분이 홍대 인근 어느 카페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계시는 바람에 기다리다 못해 스튜디오 냉장고에 곤히 잠들어 있던 MAX를 꺼내 들었다.
fantastic scar pink의 첫 번째 프로젝트 ‘fairy pitta’ 출간 후 책에 실린 배우들이 스튜디오를 찾아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때 마시고 남은 MAX가 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들이 ‘치맥’을 주장할 때에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치소’를 주장해왔는데, 오늘은 ‘치맥’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가 마감 후 회식으로 닭볶음탕을 먹게 되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닭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오늘은 닭고기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주급 주실 분을 기다렸지만…. 어쨌든,


맥주는 마시면 마실수록 배가 부르니까, 하고 그냥 MAX만 옆에 두고 있다. 사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혼자인 마당에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부담스러웠고, 주전부리를 사러 나가는 건 귀찮았다. 물론 전화를 걸어 주급은 언제 줄 것이냐, 왜 카페에서 책은 안 읽고 잠들어 버린 것이냐, 혹시 여자를 꾀고 있는 것은 아니냐, 항의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사생활까지 간섭한다는 게 좀 꺼려졌다. MAX는 반쯤 마시던 것인데도 고소한 게 제법이다. 안주로 쓸만한 과자 부스러기가 몇 있긴 하지만 나는 과자 부스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고기, 고기, 고기! 아… 그러고 보니 요즘 고기게이지가 많이 떨어졌다. 삼겹살이라든가, 삼겹살이라든가, 돼지갈비라든가, 돼지갈비라든가…. 소고기는 즐기지 않는다. 돼지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소고기. 돼지고기라면 부위도 가리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장도(곱창 막창 따위는 매워서 싫지만 삶은 것이라면 OK), 등뼈도, 족발도, 진심으로 사랑한다. 매일매일 고기만 먹고 살 수는 없을까. <생방송 오늘의 아침>에선 기적의 밥상으로 각종 채소를 올리던데, 채소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지만, 채소도 맛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고기 사랑이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본능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조금은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자제하고 싶기도 하지만….
안주도 없이 MAX에 손을 대게 된 건 글 때문이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원고는 둘째치고라도 자꾸,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거꾸로 가는 건 연어로 충분하다. 적어도 연어는, 맛있기라도 하지. 답답한데 어데 하소연할 곳은 마땅찮고, 어차피 내가 아니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이니 술이라도 먹이고 정신 차리라고 호되게 을러메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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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
2011. 5. 11. 17:41

처음으로 자가주유라는 것을 해 보았다. 어쩌다 보니 저녁을 거르게 되었고, 며칠째 기분은 분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술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주소록을 뒤져 술친구를 섭외하곤 하는데 어제는 그것마저 귀찮았고, 그러다보니 집에서 대기 중이던 그에게마저 손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모르는 척하고 싶을 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자가주유는 ‘self’니까. ‘self’만큼 가벼운 것이 또 어디 있겠어. 그래서 자가주유를 위해 veloso로 갔다.

한산한 veloso는 늘 그렇듯이 아름다웠다. 맥주를 주문하고, 안주삼아 샌드위치를 곁들이고,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 몇 번의 셔터를 누르고, 노트를 꺼내 펼쳐 놓고, 컵에 따른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식도와 위 사이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쏙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자가주유는 그렇게 황홀하리만큼 아늑했다.

꽤 오랜만에 편안하다, 고 생각했다. 머릿속을 뒤져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고, 이토록 좋은 음악 속에서 흥미롭지 않은데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걸러낼 필요도 없었다. 말하지 않고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어제는 유독 좋았다. 사납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언제나 듣고 싶은 그 한 마디를 어제는 내게서 들었다. 나는, 가끔은, 나를 칭찬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는 건, 나를 인정하는 건, 누구보다 내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나는 나를 비하하기 바빴고… 어쨌든 유치한 나르시즘에서 비롯된 자아도취라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날 사랑하겠다는데 막거나 비하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는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느냔 말이다. 아무튼 먹고 마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가만 앉아 있다가 veloso를 나서는 길, 내가 마지막 남은 손님이었다는 사실에 짜릿하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가끔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자가주유를 하는 것이 좋겠다. 나를 위해서라도, 내 안에 고인 오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러다 보면 혼자서 선술집에 앉아 소주를 기울이게 될 날도 오겠지. 아,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로 술을 즐길 수 있게 될 거야.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