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노프의 첫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후회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맥주를 마시거나 아무리 귀찮아도 소주를 마셨어야 했다고. 혀끝에선 어떤 알코올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빨간 라벨에 낚였던 것이다. 모종의 배신감에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어, 애꿎은 술병을 가만 바라보다 문득, 혼자 마시는 술이 외롭게 느껴지는 건 알코올 함량이 턱없이 높거나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젯밤엔 잠깐, 외롭다고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스미노프 소다수에겐 잘못이 없다. 소다수라고 씌어 있었으니까. 소다수를 잘못 이해하고 빨간색에 혹한 내 잘못이다. 얼마나 크고 아름답든 머지않아 거품처럼 스러질 것이 ‘기대’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던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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