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4. 17:12
그가 다니던 회사의 상사 D를 만나는 자리였다. 그가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면 염치 없이 끼어들곤 해서 어지간한 직장 동료의 얼굴과 몇몇은 연락처까지 알고 있는 극성 마누라이기 때문은 아니고, 그저 술자리를 찾아 헤매는 외로운 애주가랄까. 그렇다고 술자리마다 끼어드는 건 아니니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어제도 그가 D를 만난다기에 술값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부족하면 언제든 전화하고 즐겁게 마시고 오라고 했었다. 분위기 봐서 부르라는 말도 곁들이고. 이 말은 한 시간쯤 후에 술값이 부족할 경우 직접 달려가 계산해 주겠다는 말로 바뀌었고, 그냥 합석하라는 답을 받기에 이른다.

D 앞에서 차마 새우튀김을 찍을 수 없어 화장실 핑계로 밖에 나와 횟집 외양을 찍었다. PPL은 싫지만, 이민정은 예쁘니까, 하면서.

한편, D는 회를 즐기는 이라 술을 마시면 대개 횟집에서 술을 마시곤 한다. 회 한 접시와 새우튀김과 참이슬이 홍대 단골 횟집의 단골메뉴. 새우튀김은 고맙게도 회를 즐기지 않는 나를 위한 대안이었고, 내가 합석하는 날이면 D는 늘 새우튀김을 주문해 주곤 했다. 어제도 회 한 접시와 새우튀김 한 접시를 놓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마누라가 젓가락이 있거나 말거나 -아마도 술잔 있으면 그걸로 됐지 뭐, 하는 식이었을 것이다- 무심한 그와 D와 술을 마셨다. 나중에 보니 나를 위한 수저가 테이블 한 쪽에 있었지만 팔이 닿지 않았고, 팔을 뻗거나 그의 옆구리를 찌르기도 귀찮고, 안주도 안주니 만큼 그냥 손으로 집어 먹었다. 사실, D는 상당한 애주가로 그가 함께 일하던 시절 매일 술을 먹여 그는 급성 간염에 걸려 노란 인간이 되었던 일이 있어서, 차라리 나를 먹이라는 심정으로 술자리에 합석하곤 했었다. 다른 나이든 사람과 달리 새로 꾸린 일의 성과를 자랑하는 D의 이야기가 듣기 싫지 않은 건,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단 접고 들어가는 성격 때문이 아니다. 그냥, 듣고 있으면 듣고 있어도 좋을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차곡차곡 쌓은 경력을 딛고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D의 모습에서 나이 잘 먹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D와 그는 서로의 근황과 업계 이야기와 인터넷 등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전작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참이슬 원샷 한 번에 새우튀김 하나를 먹으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 그와 나의 바람대로 내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술값을 치르고, 자신의 관자놀이 옆에 브이를 그리며 멀어져 가는 D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