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6. 15:37

친하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말없이 소주를 마셔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무슨 말을 하며 소주를 마셔도 즐거운 사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비추어 보아, 친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인물과 술을 마시게 됐다. 대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술을 마시게 되는 건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다거나, 무언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무언가 부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거나. 어쨌든, 조금 덜 어색할 수 있을까 해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생고기와 소주를 마셨다.

어색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있을 때, 소주를 조금 급하게 마시게 되는데, 그 날도 그랬다. 잔은 비워지기가 무섭게 채워지고, 채워지기가 무섭게 비워지고 있었다. 한 병을 비우고, 두 번째 병을 반쯤 비웠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단아하다 싶은 단발, 단정하다 싶은 청바지와 티셔츠, 무엇보다 착해 보이는 보디라인까지 한 눈에 반해버릴 만큼 이상적인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불도 끈 마당에, 불판 위에 고기도 몇 점 없는 마당에 음식 사진을 찍는 척 그녀를 몰래 촬영했다.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아니고, SNS에 사연을 올려 그녀를 찾을 것도 아닌 마당에. 단순한 탐미주의의 발현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뭔가 떨떠름한 이 충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란 사람을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필요하다 싶다. 당장 결론이 나지는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탐미주의자일 뿐.


어쨌든 그 날의 술자리에서 오랜만의 고기보다 소주보다 그녀가 더 기억에 남는 건 술자리 후 그와 말다툼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아름다움에 관한 내 취향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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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