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2. 18:12

K의 집들이였다. 그녀가 이사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우리동네 사람들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이제야 집들이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원 중 한 사람은 여전히 회사원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급성 배탈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막내’가 되었고, 소소한 놀림을 받았다.
K는 집들이가 아니라 그저 ‘놀러온 것’이라고 생각하라 했지만 그저 ‘놀러온 것’이라고 하기에는 상다리가 휠 정도로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K는 마실 줄 아는 사람답게 만들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 술자리는 저녁 9시 30분까지 이어졌는데, 쉬지 않고 먹고 마셨다. K의 시댁에서 가져온 동동주(라고 추정할 뿐)를 동동거리며 3리터 가량 마셨고(이렇게 맛있는 술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는 동안 K가 만든 음식마다 합격 통보를 해주었고, 오순도순 쉬지 않고 마셨다. 심지어 저녁 무렵엔 집 밖으로 자리를 옮겨 소주와 사케를 더 마셨다.
세 여자는 꽤나 광범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들은 이 기억상실이 취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매우 유익한 것들이었다. 먹고 마시는 데 필요한 양념이 아니라, 언젠가 팝업창처럼 튀어 나와 도움을 줄만한 그런 수다였다. 사실 수다는 여자에게 있어 그 주제를 불문하고 매우 건전하고 유익한 것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언제 그렇게 먹고 마셨냐는 듯 우리들은 안부 문자나 전화 한통 없이 다음 술자리를 기약하고 있다. 암묵적인, 우리동네만의 규칙 같은 것이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