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3. 21:21

 

 

H는 맥주에 빨대 꽂아 마시는 걸 좋아한다. 생맥주든 병맥주든 캔맥주는 맥주를 마실 때면 대체로 빨대를 꽂아 마시곤 한다. 그래서 한 번 따라해 보았다. 음식을 먹을 때,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상대가 먹는 방식대로 먹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제법 설득력있는 이야기라 음식을 먹을 때면 주로 상대의 취향을 따르는 편인데 술이라고 오죽할까.

H는 배우이고, 오목교역 인근에 살고, 옥탑방에 살고, 자그마한 옥상에 평상을 놓고 지인들을 불러다 술도 먹고 밥도 먹고 한다. 아마도 그녀의 집에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 우리들은 낮부터 신나 있었고 내일이 없다는 듯 술을 마셨다. -왜 내 주위에는 내일이 없다는 듯 술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조금 궁금하다- H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식 삼아 마시기로 했던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먹을 거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맥주는 조금 미지근했지만 그건 날씨 때문이 아니라 ‘함께’ 술 마시는 게 좋아서 달아오른 사람들의 열기 때문이었다. H가 맥주를 마시는 방법을 따라해보고 싶었던 게 기억이나 주방에서 빨대를 찾아 H의 캔에, 내 캔에 하나씩 꽂아서 쪽쪽 마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빨대 끝에 맺히는 맥주 거품이 꽤 사랑스러웠다는 것이 시식평의 전부다. 빨대로 마시니 더 배부르다는 것도.

고기를 굽고 새송이버섯도 굽고 김치도 굽고 막걸리, 청주, 소주, 맥주 종류 가리지 않고 마셔댔다. 사람은 하나 둘, 늘어가고 빈 술병도 하나 둘, 늘어가고 취기도 하나 둘, 늘어갔다. 그러다 H를 붙들고 잠깐 훌쩍이기도 했고, H는 어서 집에 가라며 -고맙게도- 등을 떠밀어 주었고, 덕분에 더 큰 민폐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일을 했고, 또 일을 해야 했고, 일이 끝나가기도 했고, 뭐 그렇고 그래서 잠시 훌쩍였던 모양이다. 술 마시고 훌쩍이는 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잠시 고민했는데 이내 그만 두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훌쩍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옥상에서의 술자리 이후로 계속 맥주를 마시고 있다. 저녁에 밥 대신 한 캔,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새로운 맥주를 발견하면 또 한 캔 -최근 편의점에는 일본 맥주가 강세인 듯 싶다. 심지어 ‘기린’도 있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나면 기분 좋아서 한 캔, 일이 많으면 많으니까 또 한 캔, 집에서 사무실에서 홀짝 거리고 있다. 배가 부르지만, 다른 안주는 아예 입에 댈 수도 없게 배가 부르지만 서른 한 살의 여름, 맥주는 꽤나 큰 위로다.

 

세상의 계절과 다른 계절을 산다는 것, 어쩌면 맥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세상의 계절과 다른 계절을 살고 있고, 세상의 계절과는 상관 없이 하나의 계절을 끝냈고, 그래서 또 맥주는 필요하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것만큼 다행인 것은, 없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