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9. 15:52
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노느라 바빠 게으름을 피운 덕에 전부터 만나자는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장소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날 그녀는 조금 우울해했고, 저렴한 가격에 두툼한 생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고, 다소 먼 거리임에도 기꺼이 그녀가 홍대로 나와주었고,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합정역 3번출구라는 접선장소에서,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알아보자마자 그녀는 '헤어 웰컴'이라며 마구 웃었다. 미소나 손짓 대신 머리로 인사를 한다는 거였는데, 저녁을 먹을 즈음엔 익숙해졌는지 잘 어울린다는 칭찬까지 해 주었다.

농장직영이라 저렴한 가격, 두툼한 생고기를 공급할 수 있었던 삼팔이네의 고기와 김치와 소주.


온갖 짐을 바리바리 들고온 그녀를 이끌고 간 곳은 갖가지 추억이 깃든 삼팔이네(원래 삼삼이네였는데 고기 가격이 오백원 오르는 바람에 삼팔이네로 바뀌었다. 물론, 혼자 부르는 상호이니 혼동하지 않기를). 전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고, 아침 한 끼로 추위와 싸웠던 나는 공기밥까지 추가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고, 이에 질세라 그녀 또한 맥주를 섞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철판 위에는 생삼겹 말고도 A, B, C, D… 등 우리가 함께 알고 있거나 각자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 고기와 함께 구워지기도 했다. 다음 주말에는 꼭 함께 때 밀러 가자,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별난 인연이다. 새삼스럽게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곤 콩나물과 김치와 상추를 서너번쯤 리필하고 고기 1인분을 더 구워 먹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친구 같은 그녀와 각자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비운 뒤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신림에 사는 그녀가 좀더 쉽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합정역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먹고 마셨다. 그녀와는 어쩐지, 사회에 나와 만난 사람 사이에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어떤 유대 같은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녀와 내가 둘도 없는 목욕 친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들은 화장실은 같이 가도 목욕탕은 좀처럼 같이 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모두 까발려야 하는 목욕탕의 특성과 모두 까발리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의 특성이 맞부딪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와는 함께 놀러간 월미도에서 샤워로 안면을 트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때목욕 친구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눈 앞에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게으른 나이지만 그녀라면, 그녀만큼은 오래오래 때목욕 친구로 남고 싶다.





◁ 합정역 근처 용다방의 커피와 치즈케이크.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 어쩐지 보약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