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 17:13
그와는 하도 술을 마셔서 특이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희한하지, 마셔도 마셔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게 되는데, 어제는 뭔가 집중해서 술을 마시기 위해 집 밖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고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주 찾는 술집 가운데 한 곳으로 닭고기가 대표메뉴지만, 정작 닭고기를 먹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안주보다 딱 소주 한 병 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자금이 넉넉하면 닭고기를, 부족하다 싶으면 모듬소세지를 먹는다. 그래서 어제도 모듬소세지를 먹었다.

아, 맛있는 모듬소세지. 소세지마다 약간 맛이 달라 먹는 재미가 쏠쏠, 소주 도둑 중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보통 소주 한 병이면 마무리되는 술자리지만 어제는 두 병을 비웠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 대한 이야기, 나는 글 이야기를 했지만 대미를 장식한 것은 처세술이었는데, 매우 드물게 그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앗싸!). 그는 이야기를 들을 때 습관적으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곤 하는데, 그건 반론의 여지가 많다거나 재미없다는 표시다. 그에게서 최상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다시 생각해도 조금 멋있게 느껴지는 내 이야기는, 뒷담화를 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내가 갖고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아,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사람이 그토록 미웠던 이유가 내가 갖고 싶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니. 심지어 그 사실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것마저 슬프다. 그 사람과 더 잘 지낼 수 있었는데, 그 사람과 더 멋지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 수 있었는데, 단순한 시기 질투로 포장된 나의 비루함 때문에 다 어그러지다니. 이래서 사람은 참 약하다, 어리다. 늘 보람찬 술자리지만 유독 보람찼던 술자리였다.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