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8. 12:14
지난 목요일 이전부터도 나름대로는 강행군이었지만, 목요일부터는 정신적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목요일, 콘서트를 위한 설치 작업을 마치고 테스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로 다른 확장자명을 가진 파일들의 호환을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묵혀 두었던 와이브로가 빛을 보았다) 곰플레이어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와 MP4와 WMV와 각종 코덱과… 노트북 속 ‘0’과 ‘1’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출구를 찾았다. 자정 가까운 시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사야했는데, 10분 사이에 잊어버린 채 집에 돌아와 슬픔에 잠겨 잠들었다.



금요일, 드디어 콘서트 시작. ‘한 회에 하나의 실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임했던 영성 오퍼레이터였건만 실수연발이었다. 음향과 조명, 그리고 가수까지 골고루 실수를 해 준 덕분에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용납할 수 없었다기 보다는 아쉽기 그지없었다. 엎질러진 물 닦으면 그만이니 ‘용납’의 문제는 애초에 적용할 수 없었으므로. 하루 종일 타이레놀 세 알로 간신히 버틴 후 드디어 맥주를 샀다. 오비골든라거,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생각만큼 맛있지가 않아서 피로는 여전했다.
토요일, 드디어 발생 가능한 변수를 모두 손에 쥐었다. 그래도 지랄맞은 성격은 잔뜩 곤두서서는 또 타이레놀을 요구했는데, 지켜보던 프로젝터 기사가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두 번의 공연을 치르고, 그 와중에 총감독은 자꾸 자리를 비우고, 외로웠지만 외로워서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 걸을 힘도 없는 주제에 맥주를 사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신기신 편의점에 들러 코로나엑스트라를 샀다. 안주도 없이 순식간에 한 캔을 비우고, 500ml를 살 걸 그랬나 잠시 후회한 뒤에 기절하듯 잠이 들긴 들었는데 내내 뒤척였다.
일요일,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상영을 하면서 조금 울컥했다. 내친 김에 조금 울어볼까도 싶었는데 가수들이 먼저 울어버렸다. 지랄맞은 성격은 여전히 타이레놀을 요구했지만 곧 뒷풀이를 할 거였고, 곧 소주를 마실 거였으므로 외면했다. 드디어 뒷풀이, 두 병 가량의 소주를 들이붓고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정신없이 나흘을 보내고 나니, 생애 첫 영상 오퍼레이터의 추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다만, 맥주의 효용가치를 찾은 기분이다. 그걸로 됐지 뭐.

'alcoho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입 맥주를 마시다  (0) 2011.07.04
눈물을 마시다  (0) 2011.06.30
소주 대신 두통을 마시다  (0) 2011.06.19
HEINEKEN을 마시다  (0) 2011.06.16
와인을 마시다  (2) 2011.06.13
Posted by izay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