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3. 22:18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에 술을 마시면 일주일이 빨리 지나간다는 속설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에게 ‘월요일’만큼 좋은 핑계도 없었다. 백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월요일이 월요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래서 더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사랑하는 벨로주에서.
맞은편 건물 유리문에 비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꼼꼼히 뜯어보면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나는 만날 그리웠고 그립고 그리울 거라서 또 한 번 그리워하는 것이 무에 대수냐 싶기도 하지만 그리운 건 그리운 대로 두는 게 좋으니까 그냥 그리워했던 것 같다. 습관처럼.
거푸 맥주를 마시고, 취하기는커녕 또렷해지는 정신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역시 맥주는 이래서 좋아’라고 생각했다. 늘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맥주에게 드디어 진심어린, 애정도 조금 담은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아, 정말 큰 수확이다.
서른에 대해서 이런저런 토론을 하고, 작업에 대한 궁금증을 주고받기도 하고, 마흔에 대해 이런저런 대비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느라 미처 잡아두지 못한 시간의 뒷덜미를 아쉬워하며 12시 반쯤 일어났다. 못 다 마신 맥주는 언제라도 마시면 그만이고, 못 다한 이야기는 장독에 담아 묻어 두었다가 묵은지 찌개를 끓여 먹으면 되니까.
좋다, 좋아. 월요일에 술 마시기. 월요일에 맥주를 안주 삼아 수다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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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zayoi